눈으로 만든 사람 - 최은미

2025. 3. 7. 15:13

30p - 31p

 

진아씨가 냉동실에서 꺼낸 비닐 팩 뭉치를 펼치기 시작했다.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진아씨를 보았다.

그러니까, 그냥 한번 벗겨본 거라는 그 남자랑, 아이 앞에서 자기 와이프를 진아야, 진아야아아아! 하고 소리쳐 부른다는 그 남자랑, 발기만 되고 사정을 못해서 할 때마다 사람 진을 다 빼놓는다는 남자, 항문이 아니면 하기 싫다고 졸라대는 남자, 자기 뜻이 안 받아들여지면 이상한 장막을 치면서 주말마다 온 가족을 불편한 분위기로 몰아넣는 남자, 서윤이 아버지인 남자, 자기 면도기로 겨드랑이 제모를 하면 개정색을 한다는 그 남자랑 살려고, 질 타이트닝 시술 후기에 정보 좀 달라고 댓글로 구걸을 했어?

"숨막혀서 더 못 있겠어, 진아씨. 에어컨 틀 거 아니면 다음에 얘기하자."

"그냥 있어."

식탁 의자에 젖은 솜뭉치처럼 웅크리고 앉아서 진아씨가 말했다. 웅크리고 웅크리다가 한 계기만 생기면 몸을 부풀리며 터져버릴 것 같았다. 나는 그때 진아씨를 보며 분명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거 다 녹을 때까지만, 그때까지만 있어."

나는 식탁 위를 보았다. 진아씨가 펼쳐놓은 건 언젠가 가래떡을 꺼내다 진아씨가 지나가듯 말해주었던, 냉동을 시켜놓은 모유였다. 손바닥만한 유축 팩이 여섯 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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