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I 영어 I 모임]/독립운동사 연구
재판장에서 피고인 최후 진술이다 동아일보 1923.8.12~13 김시현 (공유) : 민중읠 위하여 희생코자 하는 사람이므로 징역 10년은 고사하고 백년이라도 거기에 불복을 하려고도 하지 않소 이현준 : 징역이나 사형은 의열단에 가입할 때부터 자각하였던 것이므로 여기에 대하여는 십년이 되나 백년이 되나 사형이이 되나 무엇이드지 감수할 터이므로 구구한 변명을 아니하겠소. 남영덕 : 나도 역시 의열단원인 고로 여러 말하지 않으려 하오 유시태 : 류병하는 사실 심부름뿐인데 그에게 하는 처벌은 나에게 겹쳐주시오 동아일보 1923.8.13 황옥(송강호) : (눈에 눈물을 머금고 방금 울 듯한 태도로) 경시까지라도 승급을 시켜주리라고 굳게 결심하고 모든 사실을 말하지 아니한 후 안동현에 있던 폭탄이 경성으로 들어오기..
이 마을 곳곳에 망향의 언덕이 있습니다. 그 언덕에 서면 멀리 바다가 보입니다. 조상들은 그 바다 건너 한국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방향이 틀립니다.그러나 저 바다만 건너면 한국이 있다는 생각으로 망향의 언덕 위에 서서 주머니 속에 간직하던 망건을 꺼내 쓰고고향의 부모를 향해 절을 했을 것입니다 -14대 심수관, 일본의 전설적인 도예가문, 그는 400년전 임진왜란 후 일본에 강제로 납치 된 심당길의 후손-아직 그의 후손은 400년 조상 심당길의 망건을 보관하고 있다
광복 70년 신년 기획 시리즈, 오늘은 세 번째 순서입니다. 연해주에서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경제적으로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었고, 갑자기 정부 보조금마저 끊겨 근근히 생활을 이어가는 후손들도 있었습니다. 이석재 기자가 러시아 현지에서 취재했습니다. 모스크바 변두리의 한 주택 단집니다 부엌 달린 방 하나에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손자가 살고 있습니다. 침대도 없이 소파에서 잠을 잘 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연해주의 갑부로 전 재산을 독립 운동에 썼던 최재형 선생이 일본군에게 총살된 뒤 자녀 11명 가운데 5명도 총살되거나 수용소 생활을 했습니다. 최 발렌찐(76세/최재형 선생 손자) : "인생의 막바지에서 결국 깨달은 것은 생활하는 것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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