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다감, 김혼비 -6

2024. 8. 26. 18:05

부디 가부장제의 자장이 최대한 덜 미치는 곳에서 즐겁게 보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답했다.

명절을 앞두고 여자끼리, 특히 서루가 기혼이라는걸 아는 여자끼리 주고받는 명절 인사는 이리도 조심스럽고 걱정이 앞선다. 마냥 즐거운 명절이 되리라 전제하기는 참 어렵다.

 

 여성들의 '조심스럽고 걱정스러운 명절'은 단순히 여성에게 부과되는 명정 가사노동량 때문만이 아니다. 직접 겪든, 간접적으로 건너 든든, 가부장제라는 질긴 악습의 잔재를 집중적으로 마주해야 하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철저히 남자들 중심으로 돌아간 이 이벤트에서 여성은 불평등에 굴복하거나, 어나 선까지 타협하거나, 맞서 싸우며 거부하느라 저마다의 고통을 받아야 한다. 그 중심에는 제사가 있다. 국어사전에서 '제사'를 찾아보면 "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을 바치어 정성을 나타냄. 또는 그런 의식"이라고 나온다.빨간펜을 고쳐 써넣고 싶다.

"(남자네 집안)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의 집 여자들이 동원되어 고생해서 만든) 음식을 (해봐야 전 부치는 걸 거드는 게 전부인 남자들이) 바치어 정성을 나타내는 (남녀차별 집약적) 의식."

 

 여자를 증오하는 누군각가 여자를 지배하고 괴롭히기 위해 면밀하게 고안해낸 장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현대의 제사란 성차별을 똘똘 뭉쳐놓은 응집체이다. 제사 준비를 주로 누가 어떻게 하는지는 굳이 쓰지 않겠다.

 모르는 사람 없겠지. 2021년에도 여전히 들려오는 '어머니가 손을 놓은 이후로 집안 제사가 사라졌다.'는 이야기와 집안에 며느리가 들어오자 없던 제사가 생기고 이혼으로 며느리가 사라지자 있던 제사가 없어지는 '며느리 매직!' 같은 사연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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