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다감, 김혼비 -5

2024. 8. 26. 17:55

그날  M의 교실에 간 건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드문 일이었다. 그런 내 성향과 행동 패턴을 고려했을 때 내가 M에게 자주 가야겠다고 먼저 알아서 생각했을 확률은 전혀 없었고, 생각했다고 한들 어차피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가지 말았어야 했다. 책임지지 못할 일은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다. 사실 그게 '시작'인 줄도 모르고 있었다. 내가 백지에 별생각 없이 점 하나를 찍고 말 때, 누군가는 그 점에서부터 시작하는 긴 선을 그리려 한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알었어야 했다.

 M은 끝내 오지 않은 내가 너무 미워서 전학 가는 걸 미리 알려주지 않는 것으로 복수한다며 '메롱'을 의미하는 혓바닥 그림을 그려 넣었는데, 그 그림은 편지 전체에서 유일하게 M답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게 또 오래 가슴에 걸렸다. 작은 기대일지라도 번번이 좌절될 때 조금씩 바스러지는 마음에 대해, 이루어지지 않는 무언가를 바라는 순간 받게 되는 상처에 대해 나 역시 잘 알고 있었기에 M의 아픔은 다시 나의 아픔이 되었다. 정말 미안해. 미안해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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