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만든 사람 - 최은미, 2

2025. 3. 7. 15:15

승미가 팔을 괴면서 내 쪽으로 돌아누웠다. 승미의 숨에서 끈끈한 옥춘 냄새가 났다. 긁어줄까? 승미가 물었다. 수련방 창호 밖으로 방안보다 옅은 어둠이 흘러다니는 게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윗옷을 다 벗어봐. 나는 티셔츠를 끌어올려 목 위로 빼냈다. 대중실 쪽의 흐느낌 소리는 끊어질 듯 계속 이어졌다. 나는 눈을 감았다. 차갑고 뭉툭한 것이 몸에 닿았다. 승미가 내 등줄기를 긁어내려갔다. 금방이라도 오줌이 나올 것 같아서 나는 몸을 움찔거렸다. 좋아? 응. 얼마만큼?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스무 개입 키세스 초콜릿 한 봉지만큼. 겨드랑이를 지나 팔뚝 안쪽을, 허리를 지나 골반과 허벅지를. 여기도 좋아? 응. 얼마만큼? 투게더 아이스크림 한 통을 앉은자리에서 다 퍼먹은 것만큼. 몸이 나른하게 가라앉았고 나는 피가 맑아지기 시작했다. 몽롱해지는 내 귀에 대고 승미는 속삭였다. 여기가 기정혈이야. 여기는 천주혈. 잘 기억해, 알았지? 넌 똑똑하잖아. 여기는 양강혈, 여기는 명문혈.

승미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를 간질인다. 그대로 자면 돼. 생각하지 말고 잠들어. 내가 너 해줄 테니까. 지금은 내가 너 해줄 테니까. 승미는 조심스럽고도 끈기 있게 밀어붙인다. 나를 설득해간다. 그다음날도 그다음날도 나한테 해준다. 너도 긁어줄까? 물으면 고개를 저으면서, 승미는 말한다.

내 피는 긁는다고 맑아지고 그런 피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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