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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8 당연히 크고 작은 부작용과 흔적을 남겼지요. 우리가 지금도 접할 수 있는 예로는 당시 작곡된 윌리엄 메릴의 , 해리 포스딕의 , 헨리 반 다이크의 , 제임스 로웰의 같은 찬송가들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 찬송가에는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형제애, 전쟁 포기와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긍정적 측면이 나타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앵글로색슨 테제에 부응하려는 팽창주의적 선교관이 은밀히 스며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종교적 팽창주의 내지 제국주의 흔적은 주로 미국 선교사들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파된 기독교 문화 곳곳에도, 예컨대 공격적 포교 및 선교 방식 등으로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p46 그것은 자유주의 신학이 19세기 말에 북미 대륙으로 넘어가서-개인의 구원에 집중하는 성향을 보이던 서구에서와는 전혀 달리-사회복음운동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사회악과 부조리를 청산함으로써 불의한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구현할 수 있다고 본 워싱터 글래든, 프랜시스 피바디 같은 목회자들이 주도한 이 운동은 아동 노동 폐지, 노동조합 결성, 빈부격차 해소, 여성참정권 부여 등 사회제도 개선과 정치 개혁을 위한 기독교 내의 사회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데 적지 않은 공헌을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일에는 언제나 빛이 있는 곳에 어둠이 있기 마련이지요. 왜냐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영국과 미국에서 활동한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존 피스크와 복음파동맹의 총간사로서 이 운동을 조직화한 목회자인 조시아 스트롱 같은 사회복..
p41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바울과 세네카 그리고 칼빈의 관계입니다. 테르툴리아누스와 히에로니무스가 전한 말에 따르면, 바울과 세네카는 서로 아는 사이였고 편지도 주고받았다고 합니다. 사실일까요? 남아 있는 서신이나 확인되 증거는 없지만, 이런 이야기가 나온 근거는 남아 있습니다. 4세기에 만들어진 라는 편지 모음집이 그것입니다. 이것은 후에 누군가가 바울과 세네카의 저작에 나오는 문구들을 빌려 와 만든 위작임이 밝혀졌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 안에는 두 사람이 얼나나 같은 생각을 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부부분들이 상당히 많이 들어 있습니다.
p34 그런데 15세기 이탈리아 인문주의자들이 근원으로 돌아가자고 외쳤을 때, 그것이 과연 무엇을 뜻했을까요?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달리, 그것은 단순히 헬리니즘을 부활시키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헬리니즘과 헤브라이즘, 바꿔 말해 그리스 로마 문화와 기독교 문화를 하나로 융합하자는 것이었지요. 그러기 위해 그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성서 이야기를 융합하여 하나로 만들려는 웅대하지만 무모한 이상까지 ㅍ무었습니다.
p30-31 14세기를 풍미했던 화가 프란체스코 트라이니가 1341년에 그린 입니다. 이탈리아 피사에 있는 산타카테리나 성당 제단 뒤에 놓여 있는 이 그림의 상단 중앙에는 보시다시피 그리스도가 앉아 있습니다. 도상학자들에 따르면, 그 왼편에는 마태, 누가가 각자 자기가 쓴 복음서를, 바울도 역시 자기가 쓴 서신서를 들고 앉아 있고, 오른편에는 모세가 십계명 돌판 두 개를, 그리고 요한과 마가가 역시 그들이 쓴 복음서를 들고 앉아 있지요. 그 아래 단의 한가운데에 토마스 아퀴나스가 을 들고 앉아 있고, 그 왼편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을, 오른편에는 플라톤이 를 펴들고 서서 아퀴나스를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그 하단 중아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서구에 전한 이븐 루시드가 비스듬히 앉아 있고, 그 좌우에는 철..
p24 그 후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시리아와 페르시아, 이집트와 모로코 같은 변방을 떠돌아다니다가, 십자군 전쟁이 지속되던 12세기 중엽에서야 이븐 시나. 이븐 루시드 같은 아랍 철학자들의 저서를 통해 서구에 전해졌습니다. 우리가 아리스토텔레스 주의라 일컫는 이 철학이 전해지자 당시 진보적 성격을 지녔던 나폴리 대학교와 도미니쿠스 수도회에 속한 많은 젊은 시학자와 수도사들은 그것을 활용하여 성서를 새롭게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p16 이 둘의 만남은 마치 하나님이 기독교를 위해 오랜전부터 준비하신 것처럼 보이지요. 왜냐하면 계시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이성적으로 설명하기에 안성맞춤인 이론들을 그리스 철학이 플라톤주의라는 이름 아래 이미 수백 년 전부터 개발해 갈고닦아 왔기 때문입니다. 초기 기독교 신학자들이 플라톤을 "예수가 탄생하기 400년이나 전에 존재한 그리스도인" 또는 " 그리스어로 저술한 모세"라고 칭송한 것이 바로 그래서입니다. p17 초기 기독교 신학자들이 시급히 해겨해야 할 문제 중 하나는 오늘날 우리가 삼위일체론이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즉 어떠게 성부, 성자, 성령이 각각이면서 또 하나일 수 있느냐를-누구보다도 외부 이교도들과 내부 이단들에게-이성적으로 설명하는 것이었지요.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 그것은 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