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8일 화요예배

2017. 12. 21. 16:23

 사랑해야 했기에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김인호, 정미선 간사님, 그리고 우리 지체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 이유는 저를 한 가족으로 인정 해주셨고, 예수공동체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섬겨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믿지 않으실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제가 무사히 졸업하게 된 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몇 년 전에 모임을 한마디로 한다면 '맑게 갠 아침, 엄마 세탁 냄새'라고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졸업하는 요즘에는 구체적으로 와 닿습니다. 그래서 3가지 정도 기 이유를 나눠보려 합니다.

 첫째, 모임은 싫은 소리를 해준 사람들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모임에는 습관적이고 안락한 것은 없었습니다. 넓은 길 보다 좁은 길로 각광받는 것보다는 소외되고 보잘것 없는 곳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본능적으로 거부 반응이 일어났습니다. 떄론 부모님 핑계, 돈 없다, 시간 없다, 공부한다, 라는 핑계로 리더의 속을 많이 썩여드렸죠. 그렇고 보면 예나 지금이나 핑계 대는 것은 크게 변하지 않네요.

 1학년 때는 일주일에 4번 이상 PC방에 갔었고, 2번 정도 노래방에 갔었습니다. 2학년 때는 그렇게 다들 반대했던 DJ가 되겠다며 서울로 배우러 다닌 적도 있었습니다. 리더회의 때 감정에 북받쳐서 해선 않되는 말도 하고 혼나기도 했습니다. 3학년 때는 군대결정문제로 참 속상하게도 했습니다. 4학년 때는 대표를 하면서 지체들과 리더들을 못살게 굴었습니다. 영화<올드보이>의 오대수 처럼 잘 못을 공책에 쓴다며 서너권은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한참이 지나서야 스스로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깨닫게 됩니다.

 누군가 제게 대학시절 중 가장 큰 은혜가 뭐냐고 묻는 다며... 그건 리더가 있다 라는 겁니다. 사실 그것이 참 무섭고도 감사한 것은 주님께서 리더의 기도에 저를 만이 붙이셨기 때문입니다. 도망가고 싶고 샛길로 새고 싶어도 그때마다 리더가 손 내밀어 주지 않는다면 저는 일어나지 못 했겠지요.

 둘째, 모임은 나를 주님 앞에 사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었습니다. 요즘 대학인 취업학원으로 변질 되고, 사회에서는 높은 학력,화려한 스펙 쌓기, 알바경험을 강요합니다. 저도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어설프게 하나님을 믿으며 세상의 방법대로 따라가야 하는지, 또 어중간한 방법이 더 큰 세상을 만들어진 것들과 싸울 수 있느냐'라는 겁니다. 그 해답은 5년 6개월의 시간 안에서 있었습니다. 결코 그럴 수 없었습니다.

 돈, 시간, 열정의 젊음을 주 앞에 드리는 것이 먼저이며 배워야만 했습니다. 매일의 경건의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묵상의 즐거움을 알았고, 채플을 통해서 멍청하게 시간을 죽이는 대학생활을 새롭게 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회를 통해 가장 큰 약점인 기도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를 극복할 수 있었고 TTS, GBS, 여름, 겨울, 청소년집회, 선교훈련, 단기선교, 공동체 생활을 통해 기독교적 세계관을 쌓아 갈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에게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않다 라고 외치며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이 진정 저에게 원하시는 것은 세상의 법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순종하고 의지하는 훈련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모임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느낄 수 있던 가족이였습니다. 때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보여달라고 재촉하기도 했습니다. 혼자만의 오해로 미워하기도 하고 속상했던 적도 있었어요.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들과 싸우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목원대 공동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멈춘 적은 없었습니다. 저는 누구보다 모임에 빚진 게 참 많습니다.   왜냐하며 저 때문에 실족하고 실망한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이죠.

 리더답지못하고 대표답지 못하고 단기선교사 같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저를 기다려주고 인내하며 기도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서로를 향한 사랑의 끈은 참으로 거칠고 아름다웠습니다.

 제가 군 대체 복무로 서울메트로 지하철이 외부로 나온 역사에 근무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추운 겨울바람이 한강을 타는 추운 곳이었습니다. 아마 날씨보다는 외로움이 더 춥게 느껴지게 했었습니다. 원래 승객이 드믄 정거장에 저녁 9시가 되어 승객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때 열차 한대가 섰고 간사님이 내리셨죠. 손에는 예쁘게 포장된 선물과 함께 저의 25번째 생일을 축하해주셨거든요.

 그때 두 손 잡고 기도해 주시던 간사님의 걱정 어린 표정과 노란 전등에 비친 얼굴은 뇌리에서 잊히질 않습니다.

 수많은 감사와 은혜를 조금도 갚지 못하고 떠나게 되어 송구하고 그렇습니다.

 제가 자신있게 말 할수 있는 것은 그래도 후회없는 20대, 대학시절을 보냈습니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실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함께 그리스도의 제자를 삼자라는 길을 갈 수 있었기 때문에 참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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