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 예레미야, IVP 읽고 [김근주] -1

2019. 12. 27. 17:11

p.74 정의와 공의가 형통의 비결

 

야훼는 한결같이 부르시지만 이스라엘의 실상은 지겹도록 변하지 않는다. 그들의 옷에는 가난한 자를 죽인 피가 묻어있고 번창하고 거부가 되어 살지고 윤택함에도 고아의 송사를 공정히 판결하지 않는다. 오늘 우리 교회의 모습과 어쩌면 이리도 똑같은가.

이스라엘은 번창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요 축복으로 알아 열심히 제사를 드렸으나 가난한 사람들의 피와 눈물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오늘 우리 삶도 하나님의 은혜로 윤택해졌지만 우리는 결코 가난한 사람의 재판에 개입하지 않는다.

얼마든지 예배드리고 얼마든지 세계 선교를 위해 헌금하지만, 힘없는 이들의 억울한 사정은 남의 일이다.

 

구약 시대 통치자의 가장 중요한 직무가 재판이었음을 생각할 때ㅐ 이를 우리 사회 구조와 틀에 적용해 볼 수 있다.

즉, 구약의 불의한 재판은 가난을 초래하는 우리 사회 구조와 사람들의 무관심에 비견될 수 있다. 구약 시대에 재판 대신 제사에 몰두했다면, 우리는 구조 대신 개인 경건에만 몰두하고 가난한 자를 돕는다고 자선에만 치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때로 그들을 돕기 위해 헌금은 하면서도 그들이 계속해서 억울함을 당하는 구조를 바로잡는 일에는 철저히 무심하다.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에 신앙 공동체가 잘 나서지 않는 주된 이유는 한 번 나섰다가 혹시 자신들의 마음이나 삶이 더 불편해질까 봐 염려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모르는 체한다. 자선은 베풀지만 구조나 틀을 바꾸려 하지는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은 언제나 갈채와 환호를 받지만, 가난한 자와 친구가 되면 빨갱이라는 말을 듣기 일쑤다.

지독한 위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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